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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

스가히나_푸른아 (@pollna_HQ)

 

 

   추웠다. 혼자서 맞이하는 겨울이 얼마만이더라? 괜스레 네 생각이 났다. 이젠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너인데도, 당연하다시피 허전하다 생각했다. 너무 나쁘지. 정말 난 나쁜 사람이지. 질투심에 눈이 멀어서, 열등감에 눈이 멀어서. 적어도 사랑했다면 그렇게 보내진 말았어야 했는데. 그런데 사실, 정말로 내가 널 사랑했던 적이 있었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 단순히 어렸던 유치한 감정이었던 것만 같아. 그래도 웃었는데. 내 한 마디에 네가 웃고, 네 그런 웃음을 보고 내가 웃었는데. 역시, 마지막 말은 하지말걸 그랬어.

 

   [여보세요. 스가와라 상 맞나요?]

   “네. 혹시…… 아츠무?”

   [아… 그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

 

   내 번호는 어떻게 안 거지. 그 애와 헤어진 후에는 일절 배구에 손대지 않았다. 그건 지인들도 마찬가지. 다이치, 시미즈, 아사히 등 배구 없이도 오래 지냈던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락처에서 지우고, 번호를 바꿨다. 다만…… 말끝을 흐리는 아츠무의 말투가 많이 힘들어보였다. 그래서 평소와 같으면 가장 먼저 떠올렸을 생각인 다이치가 또 무슨 일을 저질렀구나,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초조했다. 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내가 익숙한 그 이름이 들릴까봐 겁이 났다.

 

   “편하게 말해.”

   [히나타가 없어진지 3일이 지났대.]

   “……다이치?”

   [다른 방법이 없었어. 스가와라한텐 안 말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너라면 짐작 가는 곳이라도 있을 것 같아서.]

   “시미즈까지. 거짓말은 아닌가보네.”

 

   휴대전화 너머로 어렴풋하게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시히도 있는 건가.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그 애는 그런 행동을 충동적으로 저지를만한 아이가 아니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제일로 싫어하는 아이였다. 누구 하나의 표정이 안 좋으면, 자신은 뒤로 한 채 그의 표정에 집중하던 모습이 내 기억에 가장 잘 남아있었다. 물론 타인에게 위로를 잘한다던가, 그런 자각은 없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 아주 당연한 사실을 상대방에게 말하면, 그게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는 방식이랄까. 무의식적으로 그럴 정도니, 정말로 그 애는 모두에게 태양이라는 별명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거야. 히나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이 추운 날에.

 

   “쪽지도 없었어?”

   […배구를 1년 정도 쉬고 싶대.]

   “뭐? 장난치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스가. 본인 입으로 감독님께 전화로 말했다니까 정확할거야. 그 전화 뒤로 연락이 끊긴 상태고.]

   “……기사는?”

   [이번 주 내로 못 찾으면, 그때. 적당히 개인 훈련을 더 하고 돌아오겠다, 라고 알린다던데. 히나타가 은퇴 논란에 시달리는 건 너도 싫잖아? 스가.]

   “하지만… 애초에 나한테 뭘 바라고 도와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알잖아? 나 히나타랑 연락 끊은 지 1년이 다 되어가.”

 

   그래, 히나타와 내가 헤어진지도 곧 1년이었다. 꽃이 이러네, 새싹이 이러네, 할 틈도 없이 우린 헤어졌다. 겨울이라 말하기에는 춥지 않고, 비가 내렸다. 그렇지만 봄이라 말하기에는 꽃이 피지 않았고, 찬바람이 불었다. 그때를 후회하기도, 그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그 말을 내뱉는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난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그땐 그 방법밖에 몰랐고, 지금도 난 그 헤어진다는 선택지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변명을 할 생각은 없다. 난 여전히 그의 말대로 ‘미숙한’ 어른일 뿐이니까. 그러니 여지가 부족했다. 내 어딘가에 남아있을 미련을 끌어올린다고 해도, 부족해. 굳이 내가 널 찾아야 하는 이유, 난 모르겠는데.

 

   [겨울이잖아. 부정하지 마, 스가. 히나타가 널 얘기할 때마다 언급했던 게 겨울이었어. 겨울이랑 닮았다고.]

 

   ……다이치 넌, 너무 많은 걸 기억해. 아마 헤어지기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사귄지는 4년? 삐걱거린 지는 좀 된 것 같다. 주말에 특별히 놀러가지도 않았으며, 각자 할 일만 했다. 데이트 횟수가 점점 줄었고, 스킨십이 줄었으며, 대화가 줄었다. 편해졌고 지친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카라스노 모두와 함께하는 술자리가 잡혔다. 모두가 금방 취했지만, 난 술은 일절 마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냥 취한 척 엎드려있었다. 너무 피곤했으니까. 이건 그런 상태에서 들은 이야기다.

 

   ‘도대체 히나타는 저 얄미운 스가가 어디가 좋은 거야? 이젠 그렇게 다정하지도 않지? 쟨 다정함 빼면 시체인데.’

 

   조용한 분위기 속, 다이치가 술에 취한건지 히나타에게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었다. 이건 그 말들 중에 하나였다. 당시에 히나타는 취했던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한 가지. 난 그 대화를 엿들으면서 긴장이라는 것을 했다. 그때는 그 질문에 왜 그리 긴장했는지 이유를 알면서도 애써 모른척하고 싶었다. 자신은 상대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상대가 좋아해주길 바란다니. ……바보같이. 정말 바보처럼 그의 답을 듣고는 안심했다.

 

   ‘스가 상은 겨울 같아서 좋아요. 전체적으로 겨울의 색이랑 비슷한 느낌이고, 또, 차가운 것 같으면서도 잘 녹아서? 항상 툴툴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 해준다니까요! 그래서 겨울이랄까. 마냥 다정하지만 않아서 좋아요. 뭐든 다정하면 이유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게 사랑이 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저흰 그럴 시기는 지났잖아요. 오히려 다정하면 불안할 시기죠.’

 

   그 말을 듣고 난 뭐라고 했더라? 아, 애써서 자는 척을 했던 것 같다. 헤어질 생각을 품고 있던 자신과는 너무 다른 히나타의 그 모습에, 뻔뻔하게도 안심해버린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나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뒤늦게 히나타가 그 자리의 내가 깨어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느끼긴 했지만, 역시 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죄책감을 느낀 건 느낀 거였고, 그때 우리가 헤어지기 직전이라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히나타라는 아이는 굳이 이미 변한 마음을 붙잡기 위해 그런 말을 뱉을 아이도 아니었다. 난 그렇게 언제나 너에 대해서 멋대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차갑게, 네가 말한 겨울처럼. 너를 뒤로하고 여기까지 걸어왔다. 넌 날 겨울이라고 말한 것을 후회했을까? 이제 와서 고민해봤자 무슨 의미가 될까. 난 너를 두고, 너무 멀리 왔다.

 

   “그래서? 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는데. 애초에 너무 늦었어. 3일이면 해외로 나가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야.”

   [여권은 기숙사에 있고, 히나타는 기숙사에 들른 적이 없대.]

   “뭐?”

   [연습 끝나고 바로 사라졌나봐. 아마 히나타가 가지고 있는 건 전원을 끈 휴대전화, 지갑, 물, 여벌 옷, 배구화 정도가 다일거야. 나츠의 반응을 보니 본가에도 안 들른 것 같고.]

   “장난해? 지금 기온이……”

   [알아. 그러니까 우리도 이러고 있는 거잖아.]

 

   히나타가 연습하러 갈 때 어떤 옷을 입더라? 요새 유행 중인 양털 재킷은… 원래 사도 잘 안 입고 다니고. 그렇다고 롱 패딩이나 반코트를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거의 항상 목도리랑 후드 티 위에 얇은 봄철 재킷 걸치는 게 끝 아니었나? 언제나 자기도 나를 보며 코트를 입어보고 싶다고는 했었는데. 결국 단 한 번도 입은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다. 4년간 자세히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의 옷차림이 지금 와서 너무나 신경 쓰였다. 히나타가 몸에 열이 많다고? 거짓말. 일단 히나타도 사람이었다. 매번 내 손을 잡던 그 작은 손이 따뜻했다고? 그래, 손만 그랬다. 손만. 추워도 애가 하도 건강하니까 티가 안 났다. 감기도 잘 안 걸리고, 무엇보다 본인이 춥다고 말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왜? 정말 넌 겨울의 추위까지 전부, 사랑할 수 있었던 걸까.

 

   “일단 찾아는 볼게. 기대는 하지 말고.”

   [기대는 무슨. 조만간 나츠에게도 사실대로 말하고 경찰 부를 거야.]

   “시미즈 요새 너무 날카로운 거 아니야……?”

   [이해해. 지금 이틀 째 이 일 때문에 잠을 못 잤대.]

   “……다들 무리하지는 마. 고작…… 아니 히나타도 이런 건 안 바랄거야.”

 

   전화가 끊겼다. ……고작. 다 큰 성인이 3일 간 연락이 없었다. 아무 말 없었던 것도 아니며, 지갑을 안 챙겨간 것도 아니었다. 휴대전화도 전원이 나갔다고 하기에는 일부러 끈 것에 가까웠으니, 그는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자신의 의지로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그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니 고작이 맞았다. 히나타가 주변 사람들에 비해 덩치가 작긴 했지만 그도 엄연한 운동 선수였으며, 기본 상식 정도는 다 알고 있는 아이였다. 그래서, 그래서…… 그는 당연하게도 내가 상상한 모습과 같이 어딘가에서 추위에 벌벌 떨고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 안 좋은 생각만이 나를 가득 채웠다. 1년. 그는 나에게 또 다시 1년의 시간을 더 주고, 자신을 찾으라는 걸까. …정말 찾아주길 바래? 히나타.

 

   언젠가의 히나타는 아주 우울한 표정을 지을 때도 있었다. 그때의 대화 주제는 바로 여행에 관한 이야기였다. 종종 우리는 평범한 연인들의 모습처럼 미래에 놀러갈 계획을 상상하고는 했다. 일본의 도시들을 전부 돌아다녀보고 싶다던가, 미야기보다도 밑의 지방에 있는 곳에서 휴일을 보내고 싶다던가. 물론 이제는 모두 환상과 같은 말들이었지만, 우리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상대의 미래 속에 자신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가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해요. 아주 가끔! 너무 힘들 때 있잖아요.’

 

   이때의 넌 무척 담담한 얼굴로 말해왔다. 동정 따윈 필요 없다는 듯이, 듣기만 해달라는 어조로 나에게 아슬아슬한 자신의 생각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히나타라는 아이는 참 밝은 아이였고, 이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래. 히나타는 남을 속이는데 재주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너무, 아프잖아.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했던 내가 너에겐 무척이나 아픈 가시가 되었잖아.

 

   ‘그래도 제가 어디로 도망치던 스가 상은 절 찾아줘야 해요? 절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저를 제일 잘 이해하는 사람. 무엇보다도 스가 상은 절 사랑하니까! 찾을 수 있죠? 그렇죠?’

 

   내가 정말 널 이해하고 있었던 걸까? 난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아. ‘히나타는 이럴 아이가 아니다.’라는 말을 난 무슨 근거로 할 수 있는 걸까? 그리고 ……난 이제 널 사랑하지 않아. 참 아이러니하지. 난 더 이상 널 사랑하지 않는데, 그런 상태로 널 찾아야 한다니. 무슨 생각인거야, 히나타. 내가 죄책감의 구덩이에서 평생 갇혀 살길 바라는 거야? 그렇지만 난 무슨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마법사 따위가 아니야. 네 선택으로 숨긴 건데, 그런 건데, 난 왜 이리 아프지? …왜 내가 아픈 거야?

 

   고요한 방 안에 소리 없는 외침이 가득 차 울리고 있었다. 그렇게 큰 소리로 묻는데도 그 목소리는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점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았다. 결국엔 숨을 깊게 고르고는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게 놔뒀다. 시선은 당연히 한 군데로 고정되었다. 이 집에 남아있는 유일한 히나타의 흔적. 헤어지자는 통보를 들은 히나타는 급하게 자신의 짐을 대충 챙겨서는 본인의 기숙사로 돌아가 버렸다. 히나타는 그 전날, 이제는 봄이라면서 겨울옷을 다 정리해 넣어두었다. 그리고 히나타는 그 옷들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떠났다. 겨울이 되기 전에 다이치를 통해 전해줄까, 미뤘던 일이 지금 내 앞에 분명한 형태로 남아서 자리하고 있었다. 어차피 부딪쳐야 하는 거라면, 그게 네 결론이라면. …상자 속에 모아두었던 것들 중에 히나타가 가장 아꼈던 목도리를 하나 챙겨서, 나갈 준비를 했다. 이 상황이 히나타가 내게 준 시련이라면, 떠오르는 곳이 하나 있었다.

 

   ‘전 자유가 정말 좋아요. 그렇게 걱정된다는 듯이 보지 말아요. 하지만 저흰 까마귀였잖아요. 딱 한 번이라도, 자유롭게 여행을 떠난다면 좋을 텐데! 목적지 없는 여정! 뭔 말인지 알겠죠?’

 

   네가 날고 싶다고 말하던, 내가 이젠 각자의 길로 여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던 그때 그 장소.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밖에 없었다. 물론 난 히나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나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간절히 내 생각과 네 생각이 일치하길. 제발, 정말 오늘은 너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널 찾아, 답을 내 귀로 들어야만 했다. 이 마음이 언제 사라질지 몰랐다. 1년은 너무 멀다. 그러니, 그러니까. 내게 알려줘. 내가 널 사랑했는지. 넌 나에게 사랑 받고 있다고 느꼈는지. 도대체 넌 어떻게 날 사랑할 수 있었는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무도 사랑할 수 없어. 나 자신조차도, 너도.

 

 

*

 

 

   “후-.”

 

   예상했던 것보다도 공기가 많이 차가웠다. 추위는 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남이랑 같이 있을 때의 이야기인가보다. 익숙한 풍경을 보며 10분쯤 걸었나. 저 멀리 목적지가 보였다. 저곳은 특히나 해가 질 때보면 아주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마치 꿈속을 두둥실 떠다니는 것과 같아서,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당연하다. 여긴 꿈속이니까. 뭐든 할 수 있었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도, 상대방과 헤어지는 것도. 모두 가능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고민이야. 난 단 한 번도 스가 상의 사랑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그는 단순히 무척이나 신중하고, 신중했을 뿐이다. 너무 고민이 많아서, 그리고 너무 의심이 많아서, 그 자신까지도 믿을 수 없게 된 것 뿐이다. 그래서 단순한 나는 그가 끝을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내가 더 그를 사랑해야지, 막연히 떠올리고만 있었다. 그날도 같은 생각이었다. 바람은 무척 차가웠지만, 그 냉기가 나른함을 없애주었다. 울면서도 그랬다. 이제 내가 이 사람 옆에 없으면 어쩌나. 누가 그에게 온기라는 것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태양이라고 불리는 나도 그러지 못했는데.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가르치는 입장인 그를, 누가 진심을 다해 알려주려고 할까.

 

   그날이 아니더라도 우린 언젠가 부딪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두의 태양이고 싶지 않았던 아이와, 태양처럼 되고 싶던 어른이 만났으니까. 그에 대한 격차는 서로가 각자의 사회로 나아가면서 더욱 커져만 갔다. 나 또한 그걸 느끼고 있었지만,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당연한걸. 아이가 어른을 흉내 낸다고 해서 진짜 어른이 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나도, 스가 상도 서로가 될 수 없다. 난 그런 당연한 사실을 두고 실망감보단 걱정이 앞섰다. 만약 내가 태양이 아니게 되면 이 관계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한순간에 전부 산산조각 무너질까봐, 그에게는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었다. 나도 힘들다고, 나도 노력하고 있다고, 나도 바보 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아, 춥다.”

 

   그러니 이번 여행의 시작으로 새빨간 태양이 모든 시야를 가리는 이 시간을 추억하고 싶었다. 딱히 돌발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언제나 생각하고 있던 여행이었으며,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볼까 싶었다. 나도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까. 답을 알면서도 계속 모른 척하고 있는 건 너무 미안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솔직히 말한다면 스가 상이 너무 보고 싶어. 진짜, 진짜! 너무 너무 보고 싶어. 미련이 왕창 남았음에도 우리가 이별했던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여기에서는 우리 둘 다 거짓말하지 않았다. 나도, 그리고 스가 상도. 그가 내게 건넨 그 겨울 같던 말들도 전부 진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난 사실 잘 모르겠어, 히나타. 내가 정말 널 좋아했는지.’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다. 본인은 선생님이면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언제나 그의 말이 의문문으로 끝났던 적이 많았던 것처럼. 그래서 모든 자신의 마음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에게는 나의 단순함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항상 행동과 같이 말이 나왔으니까. 난 아이스크림 먹자라고 말하면서 이미 아이스크림을 사고 있었다. 반면 스가 상은 근처 어디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지, 이 날씨에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을지 등 세세한 것들을 신경 쓰다가 결국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난 그의 물음표가 좋았다. 너무나 그다워서, 약간 올라가는 부드러운 음정이 따스해서.

 

   ‘오늘 하늘 참 맑지 않아?’

   ‘이 옷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피곤하지는 않아? 그 가방 내가 들어줄까?’

 

   물론 이 말투의 전제는 그가 항상 자신이 하는 말에 확신이 없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난 이 말투를 사랑해서, 이런 질문까지 들어버렸다.

   ‘히나타는 날 사랑했었어?’

 

   다 알고 있으면서. 다 들었으면서. 나빴어. 정말 나빴어. 처음에는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스가 상이 나한테 그러냐고 화를 내고 싶었다. 그런데 오히려 말을 내뱉는 당사자의 모습이 너무 위태로워보여서, 마치 저 말이 꼭 사랑해달라는 말처럼 느껴져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이건 내 망상일지도 몰라. 헤어지기 싫어서 이유를 붙이는 걸지도 몰라. 그래도 어차피 난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야, 그가 날 좋아하니까. 의문문이 대부분이던 그가 가끔 내뱉던 완벽한 문장들은 정해져있었다. 좋아해. 사랑해. 참 행복하다. 널 보면 웃음이 나. 난 그 확신을 아주 많이 들었으니까. 거짓말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렇지만 우리 둘 다 웃었잖아요? 난 아직도 웃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적 속에 들리는 발걸음이 익숙해서 뒤를 돌아봤다.

 

   “찾아줬다는 건, 아직도 사랑한다는 뜻?”

   “히나타.”

   “뭘 잘했다고 울어요. 미안하면 웃어요! 아주 환하게.”

 

   그날, 져버린 해는 아주 늦게 떴다. 우리 두 사람이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까지 뜨지 않았다. 고요한 새벽의 분위기에서 언제까지나 서로에게 말했다. 역시 좋아한다고. 안 좋아했을 리가 없다고. 그렇지만, 이렇게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걸. 네 웃음을 보면 행복해지는걸. 태양이 아니었어. 나의 행복, 그 자체였어. 어둠만 가득하던 세상에 태양이 떴을 때처럼, 그래서 착각했어. 네가 빛나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라고. 그렇지만 아니죠? 그래. 왜 사람들이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고 하는지, 이제 알게 된 거야. 답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됐는데. 애초에 답이 없는 문제였으니까. 그런 거지? 그런 거죠. 우리가 서로를 확인했던 것처럼, 그때처럼 그냥 웃으면 되는 거예요. 마치 어제도 본 것처럼. 익숙하다는 듯이 환하게!

후기

푸른아 (@pollna_HQ)

우와! ㅋㅋ 주제 어려웠다! 합작 주최님이랑 같이 마감 하신 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ㅋㅋ 다들 연말에 급하게 마감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사실 이 글은 처음에는 아이돌 세계관이었다가, 정말 헤어지는 결말이었다가, 요정이 나오는 세계관이었다가……. 아무튼 우여곡절을 거쳐서 이런 글이 나오게 되었네요. 스가히나 치고는 너무 안 써져서 오랜만에 한참 고민하다가 썼어요. 역시 약 새드물은 저랑 안 맞는 걸로! ㅋㅋ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자면…… 히나타는 태양이 아니라 천사다!! 라는 생각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럼 이상! 모두 올해 고생하셨습니다!

합작 선공개 리뷰

익명님 (@익명)

히나타처럼 여름에 태어난 스가가 겨울을 닮았다는 말이 좋네요. 비가 내렸다는 것, 찬바람,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는 것도 태양이 뜨는 여름의 풍경과 관계가 있겠죠. 모두의 태양이 되고 싶지 않았던 히나타와 되고 싶었던 스가. 히나타는 스가의 모두가, 스가는 히나타의 모두가 되어 봄꽃을 보고 겨울의 눈을 맞고, 때로는 가을의 자유로운 낙엽들을 보기를.

익명님 (@Rqre_ve0)

음 우선 처음에는 스가와라가 쇼요에게 했다던 그 마지막 말이 뭘까, 제목은 왜 거짓말쟁이지? 혹시 스가와라가 거짓말쟁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처음부터 두근거려 하면서 읽었습니다. 심장아 나대지 마.! 
조금 읽고 난 후에, 그니까 쇼요의 배구를 쉰다는 말을 봤을 때는 스가와라와 똑같이 저 또한 당황했었습니다. 우리 애가 배구를 쉴 애는 아닌데, 하면서 말이죠. 음, 스가와라.. 그의 반응이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것임에도 밉기는 밉네요. 그리고 그들의 과정이 연인들이 지나가는 과정, 또는 연인들이 헤어지는 흔한 과정인 걸 알고도 '안 돼! 다시 붙어! 떨어지지 마!' 라고 울부짖으면서 읽었습니다 ㅋㅋ! 연습 끝나고 바로. 에서는 걱정되는 마음이 막 샘솟았어요. 진짜 3학년들 반응 = 제 반응. 이었어요. 
그러다 스가와라가 찾아주길 바라? 에서는 바로 "어!! 찾아!! 우리 애 찾아주세요!!!" 가 나오더군요. 몰입감 갑...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스가와라와 히나타 둘 다 안타깝네요. 겨울은 추운 계절이지만 그래도 너네는 따듯하기를 바랐어.. (우는 짤) 정말 히나타의 시점을 읽으니까 이제 스가와라를 완전히 이해하게 됐어요. 히나타가 스가와라를 스가와라 본인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정말.. 눈물 또 주르륵이었습니다. 마지막에서는 정말.. 그들과 함께 울뻔했어요. 이번에는 헤어지지 말고 아름답게 잘 살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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